“학문과 경건”: 한신과 기장의 정체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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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 영(목회와신학연구소 소장)

한신의 역사는 1940년 조선신학원의 출범과 함께 시작되어 1980년까지 40년 동안 신학교육만을 담당했던 전반기와 1981년 종합화 이후 현재까지 후반기 40년의 역사로 크게 구별된다. 한신대 신학대학원 현관 앞에는 전반기 40년의 한신을 증언하는 명백한 표지가 있다. “학문과 경건”이 새겨진 기념비이다.

“학문과 경건”은 개혁자 칼뱅의 신앙과 신학의 핵심 주제이며, 조선신학원이 출범할 때 수립했던 ‘신학교육 원칙’을 요약한 것이다. 그것은 또한 자유로운 학문 연구와 자율적인 신학교육이 교권의 횡포에 의해 유린되는 것에 저항하며 1953년 기장이 새롭게 출범할 때 작성한 “호헌총회 선언서”에 반영되어 있다.

“학문과 경건”은 물려받은 개혁전통의 유산이며, 기장과 한신의 정체성이고 지향해야 할 목표이다. 여기서 말하는 학문은 물론 세속적 인문과학이 아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잠 1:7)이라는 의미의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말한다. 그래서 신학은 다른 학문 분과와는 전혀 다른 과제를 갖는다. 그것은 복음을 통하여 자신을 계시하시며, 인간에게 말씀하시고 행동하시는 하나님을 이 하나님에 의하여 제시된 방법으로 인지하고 이해하며 언어로 표현하는 일이다.

말하자면, 신학적 사고는 언제나 하나님의 말씀을 ‘뒤따르는 사고’(Nach-Denken)이며, 전적으로 그 대상, 곧 복음의 하나님에 의해 규정되는 사고이다. 따라서 신학의 학문성은 이 신학의 고유한 학문적 특성을 유지할 때 확보된다. 경건(pietas)은 저 복음의 하나님에 대한 사랑, 하나님을 주로서 경외하고 존경하는 진실한 감정, 곧 예배와 관련된 언어이며, 신학의 학문성을 따르는 순수한 교리로부터 나오는 신자의 신실한 삶을 의미하는 말이다.

예장 통합측 장로회 신학대학 경내에는 단어의 순서만 뒤바뀐 “경건과 학문”이라 쓰인 기념 표지판이 있다. “학문과 경건”이 하나님 인식(신학의 학문성)에 강조점을 둔 느낌이라면, “경건과 학문”은 신앙적 경건을 더 중시하는 느낌이다. 오랫동안 한신과 장신 양측에서 서로 “학문과 경건”이 맞다, “경건과 학문”이 옳다고 주장한 것을 아는 사람은 알고 있다.

칼뱅은 하나님 인식과 경건의 관계를 이렇게 말한다. “신앙과 경건이 없는 곳에서는” 하나님을 인식할 수 없다(Inst.I.ii.1). 경건이 하나님을 아는 학문/지식보다 우위에 있다는 듯한 표현이다. 그러나 그는 「첫 번째 제네바 신앙문답」 2항에서 경건한 자들은 “하나님 자신으로부터만 참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구하고, 그가 제시하고 선포하신 대로 그를 이해”할 것을 요청한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으면, 우리가 예배하는 것은 하나님이 아니라 유령이나 우상일 뿐이라고 단언하기도 했다(요한복음 4장23절 주석). 이는 하나님 인식이 경건보다 중요하다는 듯한 표현이다.

그러나 이것은 맥락에 따라서 경건을 강조하기도 하고 하나님 인식을 강조하기도 한 것이지 칼뱅에게 “학문과 경건”은 동전의 양면과 같다. “하나님 인식과 신앙적 경건은 서로 분리할 수 없고 혼동할 수 없다. 이렇게 개혁교회 전통에서 하나님 인식(학문)과 경건(신앙)은 변증법적 균형을 유지한다. 이 균형이 깨지거나 흔들리면 교회가 흔들린다.” ¹

한신의 교육 이념은 지난 1981년 종합화 이후 “진리·사랑·자유”로 바뀌었다. 신학교육만이 아닌 다양한 인접 학문과의 통전적 교육을 통해 다양한 인재양성을 목표로 설립한 한신대학의 설립이념과 교훈에 걸맞은 교훈이다. 그러나 종합화한 한신에서 신학교육은 어찌 되었는가? “학문과 경건”의 변증법적 균형은 이루어지고 있는가? 아니, 경건은 차치하고서라도 신학의 학문성은 확보되고 있는가?

한신은 종합대학으로서 지난 40년 동안 그 규모에 있어 괄목할만한 성장을 이루었다고 평가받는다. 그러나 종합화한 한신에서 신학대학의 흔들리는 위상을 보여주는 여러 징후들이 있다. 무엇보다 10개의 전공 영역으로 구성되어 있는 신학과 교수 정원을 재정상의 문제와 타학과와의 형평성을 이유로 8명으로 제한한 학교 당국의 교수 충원정책, 과거와 비교하여 턱없이 부족한 신학 전공 학점을 이수해도 졸업자격을 얻는 현행 학사제도는 부실한 신학교육에 대한 우려를 낳게 한다.

많은 이들이 교단의 미래를 걱정한다. 한신의 종합화는 우리의 마지막 목적지가 될 수 없다. “학문과 경건”, 이것이 우리가 물려받은 개혁전통의 기치이다. 전공 교수의 결원이 생겨도 학교 당국의 교원충원정책에 의해 필수 교원을 충원하지 못하는 곳에서 신학의 학문성과 그에 따르는 순수한 교리로부터 나오는 경건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이제 더 늦기 전에 교단이 나서야 한다. “학문과 경건”의 균형을 회복하는 일을 한신에게만 맡겨둘 수 없다. 과거 단과대학 시절 한신은 더 많은 교수진을 구축하고 있었다. 신학교육의 분리와 신학대학원 중심의 신학교육을 심각하게 고민해야 한다. 우리 안의 많은 인재들을 교수로 활용하는 방안, 신학생 전원에게 전액 장학금 혜택을 주는 방안, 일반 신자들을 교육하여 목회자로 양성할 수 있는 방안, 한신과 총회가 함께 ‘신학교육위원회’를 구성하여 ‘교과과정’ 전반을 논의하는 일 등등 여러 방안을 생각해야 할 때다.

신학은 본질적으로 모든 인간적 이름(주의, 주장 등)에서 도망쳐 나와 주님의 이름, 계시된 그 이름에게 가는 것이다(잠 18:10). 그분에 대해 아는 것, 이것이 신학의 ‘학문성’이며(칼 바르트), ‘경건’은 그러한 순수한 교리(신학)로부터 가능하다. 개교 80주년을 기념하는 한신이 “학문과 경건”의 이 변증법적 균형을 회복하여, 다시 한국교회 신학운동의 견인차가 되기를 소망한다.

¹) 정권모, “학문과 경건”, 『말씀과교회』 32호, 권두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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