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과 한시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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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현진 목사(수도교회, 연구위원)

꽃샘추위 오는때

올봄의 꽃샘추위는 여느 해보다 더 길었다, 마치 코로나19 바이러스로 인해 우리 마음이 움츠려진 것을 알기라도 하듯이. 꽃샘추위는 잎이 나는 것을 시샘하는 추위라는 뜻으로 ‘잎샘추위’라고도 한다.

양력 1월 6~7일께의 소한(小寒)부터 양력 4월 20일께의 곡우(穀雨)까지 120일 동안 닷새에 한 번씩 모두 스물네 번의 꽃바람(화신풍 花信風)이 분다고 한다. 북송(北宋)의 주휘(周煇)는 «청파잡지(清波雜志)»에서 ‘초봄부터 초여름까지 모두 스물네 번의 화신풍이 부는데, 매화풍(梅花風)이 가장 먼저고 연화풍(楝花風)이 가장 나중’이라고 적었다.

독일 말에는 ‘사월날씨’(April Wetter)란 말이 ‘변덕스럽다’ ‘변덕스러워 종잡을 수 없는 사람’을 가리킨다. 일본 말은 꽃추위(はなびえ, 花冷え)라고 한다. 중국말은 화투연(花妬娟)이라 한다. ‘봄추위엔 뼈가 시리고 가을 추위엔 살갗이 시리다’(춘동골두추동육 春凍骨頭秋凍肉)는 속담도 있다. 가을추위보다 봄추위가 더 맵다는 뜻이다.

당나라 고승 임제는 “꽃샘추위가 매워서 젊은 사람을 얼어 죽게 만든다”(춘한요초 春寒料峭, 동살연소 凍殺年少. «오등회원» 19권)고 했다. 날씨가 아직 쌀쌀한데도 성급히 봄옷을 꺼내 입는 것은 아직 젊기 때문이다. 한자어로 꽃샘추위를 ‘춘한’ 또는 ‘춘한료초’(春寒料峭)라 한다. 뒷엣것은 임제의 글에서 나왔다.

우리 속담에 “꽃샘추위에 애늙은이 얼어 죽는다”는 말이 있다. 연세 높은 노인은 세심하게 조심하는데 비해 설늙은이는 자기 나이도 의식하지 않은 채 방심하다 꽃샘추위에 당한다는 뜻이다. “이월(= 삼월) 바람에 검은 쇠뿔이 오그라든다.” “이른 봄에는 새 움이 홍역을 한다.” “꽃샘 추위는 꾸어다가라도 한다.” 고 꽃샘 추위의 의미를 제각각 보여준다.

꽃샘추위는 문학의 소재가 되기도 했다. 고려 후기 문인 이규보는 투화풍(妬花風)이란 시에서 “꽃필 때 거꾸로 바람 많이 부는데/ 사람들은 이를 꽃샘바람이라 하네(花時多顚風/ 人道是妬花)”라고 노래했다.

조선 초·중기의 문신 정수강(丁壽崗)은 태풍 같은 꽃샘바람을 경험했다. 그의 문집인 『월헌집(月軒集)』에는 “하룻밤 광풍 불어 갑자기 모든 것 쓸어갔네/ 새벽 오니 모든 나무 다 뽑혀 텅 비었네/ 사람들은 이 바람 꽃샘바람이라 말하는데/ 나는 꽃샘바람 아니라고 말하네(일야광풍홀소거 一夜狂風忽掃去/ 효래수수진성공 曉來樹樹盡成空/ 인언차풍능투화 人言此風能妬花/ 아언투화비차풍 我言妬花非此風)”라고 읊었다. 나무 뿌리가 뽑힐 정도라면 그것은 꽃샘바람이라기보다는 광풍이 일어나느 기상 이변이었으리라.

조선 중기 서거정은 ‘꽃샘추위 매워 맑았다 흐렸다 하니(春寒料峭乍晴陰 춘한요초사청음) 봄의 흥취 봄의 시름 둘 다 금할 길 없어라’(春興春愁兩不禁 춘흥춘수양불금)라고 했다.

정조는 부친 사도세자의 묘소 현륭원(顯隆園)을 수원 화성으로 이장하고 찾아가는 새벽길에 꽃샘추위를 만나고 “아버지께 근친 가는 다리 가 길목/ 꽃샘바람 새벽 안장 흔드네(逌覲橋邊路 花風曉拂鞍)”라고 읊었다.

조선 후기 이유(李濰)의 시 중에 ‘미친 꽃샘바람(妒花狂風)’이란 제목의 시가 있다.(春還消息到山中。山上杜鵑先發紅。捲地狂風吹落盡。向來榮艶片時空。) 산을 붉게 물들인 진달래 꽃잎을 다 떨어뜨리는 바람이라니 아마 거센 바람이 부는 요즈음 같이 봄 풍경이었나보다.

조선말기 문인 김석(金㙽 1850-1925)은 ‘춘한’(春寒 = 꽃샘추위)라는 시에서 ‘꽃 더디게 보는 게 아쉽지 않으나(不恐看花晩 불공간화만) 오로지 근심하는 건 보리 파종 늦어지는 것’(祗愁種麥闌 지수종맥란)이라 읊었다.

이것은 또한 시련 극복을 꽃샘추위에 빗대기도 한다. “나는 힘주어 말하고 싶다. 이 추위와 혼란은 잠시 나타난 꽃샘추위일 뿐이라는 것을. 아무리 칼바람처럼 매섭다 할지라도 소리 없이 장엄하게 다가오는 봄을 결코 막을 수 없다는 것을.”(한완상, 《우아한 패배》)

1970년대 유신독재로 얼룩진 어두운 시절을 온몸으로 부딪치며 살아온 시인 이종욱은 1981년 ‘꽃샘추위’란 시(詩)를 발표했다. ‘…바람이 셀수록 허리는 곧아진다/ 뿌리는 언 땅속에서 남몰래 자란다/ 햇볕과 함께 그림자를 겨울과 함께 봄을/ 하늘은 주셨으니’ 라며 비관적인 상황에서도 희망을 노래했다.

꽃샘추위란 말은 어떤 일을 완전히 겪어내기 전 또는 무엇인가를 성취하기 전에 겪어야 하는 마지막 시련을 상징하곤 한다. 겨울이 지나갔어도 봄을 도모할 때에는 자중하고 신중해야 한다는 말이다.

시인 강신갑의 ‘꽃샘추위’다. ‘아직 참으라 하네 / 다시 살펴 화룡점정하고 기다리라 하네 / 봄으로 가는 마지막 시련 옷고름 여미고 / 조금만 더 버티라 하네.’

이렇게 꽃샘추위란 말은 단순히 날씨(기후)가 아니라 인생살이에 견주어지곤 했다.

코로나19로 인해 자가격리 또는 준자가격리 상태를 겨우 푸는 시점이다. 각종 학교도 조심스럽게 대면수업을 시작하려 준비하고 있다. 성경은 우리에게 인생만사가 다 때가 있다고 가르친다. 겨울과 봄 사이에 오락가락하는 이 계절에 전도서 3장을 읽는다.

1 범사에 기한이 있고 천하 만사가 다 때가 있나니

2 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으며 심을 때가 있고 심은 것을 뽑을 때가 있으며

3 죽일 때가 있고 치료할 때가 있으며 헐 때가 있고 세울 때가 있으며

4 울 때가 있고 웃을 때가 있으며 슬퍼할 때가 있고 춤출 때가 있으며

5 돌을 던져 버릴 때가 있고 돌을 거둘 때가 있으며 안을 때가 있고 안는 일을 멀리 할 때가 있으며

6 찾을 때가 있고 잃을 때가 있으며 지킬 때가 있고 버릴 때가 있으며

7 찢을 때가 있고 꿰맬 때가 있으며 잠잠할 때가 있고 말할 때가 있으며

8 사랑할 때가 있고 미워할 때가 있으며 전쟁할 때가 있고 평화할 때가 있느니라

9 일하는 자가 그의 수고로 말미암아 무슨 이익이 있으랴

10 하나님이 인생들에게 노고를 주사 애쓰게 하신 것을 내가 보았노라

11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고 또 사람들에게는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느니라 그러나 하나님이 하시는 일의 시종을 사람으로 측량할 수 없게 하셨도다(전 3:1-11)

비록 꽃샘추위가 기승을 부리더라도 봄은 후퇴하지 않는다. 봄은 어김없이 여름을 향해 나아간다. 그때는 반드시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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