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의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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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4월 5일 종려주일 (삼하 7:1-17, 계 19:11-16, 요 19:17-22)

임영섭 목사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셨다고 해서 당장 세상이 달라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은 계속 가난했고 아픈 사람들도 여전히 아팠으며 로마제국의 억압도 결코 줄어들지 않았습니다. 예수의 십자가와 부활은 그 사건 자체가 가진 물리적인 힘보다 하나의 이미지, 은유, 이야기로서 사람들 마음속에 먼저 새겨졌고 수면에 이는 물결처럼 세상에 퍼져 나갔습니다. 사람들의 머릿속에 그려진 예수의 모습이 그들의 생각과 행동을 바꾸었고 세상도 조금씩 달라졌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신앙의 선조들, 출애굽의 해방, 예언자들의 예언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고향을 떠나 다니는 곳마다 돌단을 쌓았던 아브라함, 바다를 건너 만나를 먹으며 구름 기둥을 따라갔던 백성들, 서릿발 같은 경고와 따뜻한 위로를 때에 따라 전해주던 예언자들, 곧바로 세상이 달라지지는 않았지만 그 이야기와 상징들은 사람들에게 힘을 주어 믿음의 길을 걸어가게 했고 새로운 세상을 꿈꾸게 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예수가 우리에게 남긴 이미지와 이야기들은 어떤 것들이었을까요?

오늘 세 본문들에는 모두 “왕”이 나옵니다. 사무엘기하에서는 다윗 왕이, 요한복음서에는 빌라도와 “유대인의 왕”이, 그리고 요한계시록에는 다채로운 환상들 속에 “왕들의 왕”이라는 이름이 등장합니다. 아름답고 풍요롭고 빛나는 삶을 많은 이들이 갈망하듯이, “왕”은 사람들이 되고 싶고 누리고 싶은 하나의 표상입니다. 본문에 나오는 “왕”의 이미지들은 하나같이 화려한 배경들 속에서 빛나고 있습니다. 다윗은 백향목으로 지은 왕궁에 서 있고, 빌라도는 예루살렘의 웅장한 관저에서 예수를 “유대인의 왕”으로 칭합니다. 묵시 속의 왕은 찬란한 영상들에 의해서 둘러싸여 있습니다. 하지만 오늘 말씀들은 인간 세상의 피라미드 맨 위에 있는 그 “왕들”을 향해 도전장을 던집니다. 다윗이 백향목으로 아름다운 집을 지어드리겠다고 하자 하나님께서는 백성들이 잘 살도록 돕는 것밖에는 중요한 게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로마의 총독이 “유대인의 왕”이라고 칭한 예수는 왕궁 대신 거친 십자가 위에서 물과 피를 쏟으며 죽습니다. 로마제국의 서슬 시퍼런 칼과 창으로부터 초대교회 사람들을 구해줄 왕은 피에 물든 옷을 입은 “신실하신 분”, “참되신 분”이십니다. 인간이 꿈꾸고 욕망하던 왕의 서사와 은유를 이처럼 성경은 배제하고 해체하고 대체합니다. 왕관을 쓰고 높은 보좌에 앉아 군림하는 왕이 아니라, 가시면류관을 쓰고 십자가에 달려 백성들을 위해서 희생하며 신실하게 봉사하는 바로 그 이미지입니다.

우리는 세상을 그물망처럼 덮고 있는 상징, 은유, 이야기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코로나바이러스처럼 전염병이 만들어내는 소문들은 우리를 더 큰 공포에 휩싸이게 합니다. “빨갱이”처럼 이념이 지어낸 인상들은 누군가를 더 미워하고 혐오하게 합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맘몬의 허상들은 우리로 하여금 끊임없이 소유하고 소비하도록 자극합니다. 오늘날 교회 공동체에서 솟아나와 세상을 향해 흐르는 그리스도의 이미지는 어떤 것일까요? 성령을 모신 하나님의 성전으로서 우리 그리스도인이 만들어 가는 이야기는 무엇일까요? 혹시 백향목으로 지은 궁전과 로마의 휘황찬란한 퍼레이드를 떠올리게 하는 번영과 성공의 “신화”는 아닐까요? 종려주일을 맞아 예수께서는 상마(上馬)가 아닌 나귀를 타고 우리에게 오십니다. 세상 죄를 지고 가는 어린양으로, 십자가에 달린 고난의 종으로, 무덤을 나와 제자들과 소박한 밥상을 나누는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오십니다. 그 신실하시고 참된 이미지 때문에 오늘도 우리는 화려한 왕궁만을 꿈꾸는 사람들 속에서도 위로를 얻고 희망을 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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